2017년 11월 16일 목요일

정의현 객사에서 재현되고 있는 전패례(殿牌禮) 해설

[전패례 해설]
 전패(殿牌) 또는 궐패(闕牌)왕을 상징하는 일종의 위패(位牌)인데, 동지·신정(설) 및 국왕의 탄일 조하(朝賀)와 기타 하례의식이 있을 때 수령 이하의 관원과 신민들이 이를 모시고 경배하였다.
 각 고을의 객사의 정청에 모셔져 요하의를 행할 때 사용하는 전패는 국왕의 상징물이었으므로 그 보관 및 관리가 매우 엄격하였다. 이를 훔치거나 훼손하는 자는 대역죄에 해당되어 본인은 물론 일가족까지 처형되었고, 그 고을은 10년간 혁파되어 이웃 고을에 병합되며 수령은 파면되었다. 이 때문에 수령에게 원한을 가진 자들이 그를 축출하기 위하여 고의로 전패를 훔치거나 훼손하는 일도 있었다.
 객사는 객관(客館)이라고도 하는데, 고려 때부터 설치되어 운영되어 오던 관사(館舍)로 조선에 들어와서는 객사에 전패(殿牌 :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패로, ‘전(殿)’자를 새김)를 안치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향망궐배(向望闕拜 : 달을 보면서 임금이 계신 대궐을 향해 절을 올림)하는 한편,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하였다.
 전패례란 왕을 상징하는 위패를 모시고 정의현 객사에서 중앙 파견의 수령이 멀리 있는 왕에게 예를 표하는 예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향교에서는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지금까지 모시고 있는데, 이 전패는 고려 때부터 조선 때까지 객사에서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대궐을 향해 예(전패례)를 올리는 데 사용되어 왔다. 지방에 있는 관료들이나 각 지방으로 왕명을 받고 내려와 있는 관료들이 멀리서 궁궐을 바라보며 절하는 예식으로 중앙에 있는 관리처럼 왕을 직접 배알할 수 없기 때문에 왕의 상징인 전자(殿字)를 나무에 새긴 패를 모시고 전패례(殿牌禮)를 올렸다.
 원래는 전국적으로 객사가 있는 곳은 전부 전패 또는 궐패를 모시고 전패례 또는 궐례의를 행하였지만 일제시대에 모두 땅에 묻어 없애버리라고 하여 사라지게 되었으나 정의향교 유림들은 결사 항거하여 오다가 1912년 9월에 제장 오방열 유림과 정의현 유생들이 전패를 의사 오흥태의 사묘로 가사 임시 모시고 있다가 사태가 잠잠해지자 차후에 향교 대성전으로 옮겨와 모시고 있다.

 현재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전국유일의 전패를 정의현 객사에 모시고 매월 3째주 일요일에 성읍민속마을 방문객과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전패례 재현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